I. 정초기(1963년-1974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는 1963년 10월 21일에 교육이론 및 교육실제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한국교육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연구소로 설립되었습니다. 당시는 서울대학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대학에 공식적인 교육전문 연구기관이 없었고, 그만큼 그러한 연구기관에 대한 인식도 높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본 연구소가 사범대학에 부설된 이후로 각 대학에서도 비슷한 목적을 가진 연구소들이 설치되기 시작하였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행동과학연구소 및 교육개발원과 같은 교육전문 연구기관들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교육연구소는 대학 내부만이 아니라, 대학 외부에서도 교육연구 기관으로서 선구적인 위치를 점하였지만, 법적ㆍ재정적 지원이 미약하였고 조직상으로도 완전한 전문연구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는 못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사범대학 학장이 연구소장을 겸임하였고 그 아래 운영위원회가 운영되었으며, 연구실무부서로 교육기초연구부, 교육과정 및 학습지도연구부, 교육제도 및 행정연구부, 지도보급부 등의 4개 부서가 설치되어 운영되었습니다.


이종수 학장이 1963년 연구소 창립과 동시에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어 1967년까지 재임하였고, 이어서 김성근(제2대, 1967-1971), 서명원(제3대, 1971-1973), 정범모(제4대, 1973-1975), 박한식(제5대, 1975-1976) 학장이 역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연구소 소장은 학장이 겸임하는 명예직이었고 연구소 실무는 거의 이영덕 교수가 주관하였습니다. 교육연구소가 사범대학의 부설 연구기관으로 설립되고 사범대학 학장이 연구소 소장을 겸임하였던 것은 초기의 상황에서 불가피한 면도 있었고, 교육연구소가 공식적인 연구기관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면도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지만, 연구기관의 대표자와 연구실무의 책임자가 실질적으로는 이원화되어 운영되었다는 점은 교육연구소가 전문성을 발휘하는 데에 장애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체제는 1967년 박용헌 교수가 미국에서 귀국한 뒤 당시 이영덕 교수가 행동과학연구소의 창립에 관여하게 됨에 따라 교육연구소의 연구실무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에도 크게 변화가 없었습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되기까지 이와 같은 이원적 운영체제는 계속되었습니다.


이처럼 법적ㆍ제도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교육연구소의 연구활동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97년 현재 확인된 바에 의하며, 1963년부터 1975년까지 이루어진 연구는 총 26건에 이릅니다. 연구경향은 초기에 「일반지능검사」(1966), 「창의성검사」(1968) 등의 심리검사와 「성취동기 육성을 위한 실험연구」(1969), 「교사자질 연구」(1968), 「교육행정가의 지도성 함양을 위한 연구」(1968) 등과 같은 교육심리학적 연구가 다수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후 「국민학교 통일교육의 진단과 개선에 대한 연구」(1971), 「통일의식의 진단과 개선에 관한 연구」(1972), 「남북 정치사상교육 비교분석」(1974) 등을 비롯한 일련의 정치교육ㆍ통일교육에 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II. 확대발전기(1975-1989년)

교육연구소는 그 발전의 중기에 해당하는 1975년-1989년 기간 동안 비록 외적인 측면, 예컨대 연구소의 법정화 문제나 재정적인 지원 등과 같은 면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없었지만, 내적인 측면에서 확대, 발전되는 변화를 이룹니다. 여기에는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화계획이 추진되어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던 일, 대학의 연구기능을 강화하는 정책이 취해졌던 일들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선 시설 면에서 보면,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교육연구소도 현재의 사범대학 건물로 옮겨 연구공간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1975년 12월 17일 대학내 연구소 기능을 강화하려는 정책에 따라, 사범대학 규칙 제360호에 근거하여 교육연구소의 정관이 개정되었다는 점입니다. 개정된 정관에 따라 사범대학 학장이 연구소장을 겸임하던 규정이 삭제되고, 연구소장은 연구소의 연구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교수를 대상으로 서울대학교 총장이 임명하는 규정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새 규정에 의하여 당시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었던 정범모 교수가 1976년 1월 8일자로 교육연구소 제6대 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연구소의 운영을 일원화함으로써 연구활동의 영역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습니다.


교육연구소의 연구활동을 활발해지게 한 또 하나의 요인은 1953년에 설립되어 당시 교육학과 내에서 운영되어 오던 교육심리연구실이 교육연구소와 통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교육심리연구실은 20여년간 각종 심리검사도구를 정력적으로 개발하고 이밖에도 교육연구에 대한 다양한 연구역량을 축적해온 기관이었습니다. 초창기부터 이 연구실을 주도하여 왔던 정범모 교수가 새롭게 출발하는 교육연구소의 소장으로 임명됨으로써 교육심리연구실의 연구역량을 교육연구소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김호권(제7대, 1978-1978), 정원식(제8대, 1978-1980), 이돈희(제9대, 1980-1982), 이영덕(제10대, 1982-1986), 황정규(제11대, 1986-1988) 교수 등이 연구소장으로 임명되면서 교육연구소의 연구영역이 확대되고 연구활동도 한층 활발해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총 25건의 연구과제가 수행되어 정초기라 할 수 있는 1963년-1974년 기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였지만 연구의 주제 면에서 교육이념 연구, 교육정책과 제도에 관한 연구, 교과과정 및 교수방법에 관한 연구, 현직교육에 관한 연구, 사회교육에 관한 연구, 생활지도에 관한 연구 등으로 그 영역이 다양해졌습니다. 이 시기 교육연구소는 이러한 연구활동 외에도 각종 연구출판물을 간행하고 국제학술초청강연회를 개최하여 연구소의 활동영역을 확대해 나갑니다. 우선 1980년 1월에는 「서울대학교 교육학연구」라는 명칭의 연구 모노그래프를 발간하기 시작합니다. 이 연구 모노그래프는 김순택 교수의 「한국 장학금제도의 개선방안 탐색」(80-1)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한 편 이상씩 발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발간사업은 1981년 5월 1일에 「교육학 용어사전을 발간한 일입니다. 이 사업은 비단 연구소의 연구원들만이 아니라 각 대학의 교육학 교수와 교육개발원의 연구인력 등, 당시의 교육연구역량이 총동원된 사업이었습니다. 편집위원은 당시 연구소 소장이었던 이돈희 교수 외에 박성수(서울대), 김신일(서울대), 서정화(한국교육개발원), 김순택(서울대), 임인재(서울대) 교수 등이 맡았고, 집필진에는 강영삼(국민대) 교수를 비롯한 44명의 교수 및 연구원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교육학 용어사전」은 그 발간 서문에도 기술되어 있듯이, “우리나라 교육학의 균형적인 발전과 창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하나의 유용한 학문적 도구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발간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업의 의의는 교육연구의 기본적인 도구를 마련한다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당시까지 축적된 교육연구 역량을 집대성하고 이후 교육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연구소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냄으로써 교육연구소의 위상을 고양시키는 데에 기여하였습니다. 교육연구소는 이와 같은 연구활동 및 연구물 출간사업을 통하여 연구소의 내실을 충실히 하는 것과 함께 외국의 저명한 학자를 초청하여 학술강연회를 개최함으로써 교육연구의 국제화를 도모하는 활동을 시도하게 됩니다. 1983년 7월 9일 시카고 대학의 B.S. Bloom 교수를 연구소로 초청하여 “Talent Development Process”라는 주제로 학술강연회를 개최한 이래, Paul Nash(미국 일리노이 대학), Walter Feinberg(미국 일리노이 대학), Michael W. Apple(미국 위스콘신 대학) 교수 등의 초청강연회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교육연구소는 외부의 지원이 미약한 상황에서도 이와 같이 자체 연구역량을 높이고 그 활동영역을 확장함으로써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이후 교육연구소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데에 큰 밑받침을 마련하였습니다.

III. 도약기(1990-현재)

교육연구소는 1990년 이후 그간에 축적된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연구소 운영을 체계화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단계를 맞이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육연구소의 운영을 체계화하기 위하여 1990년 3월 24일에는 사범대학 규칙 제802호에 근거하여 연구소의 규정을 개정하였습니다. 이 규정에는 이제까지 연구부 및 출판부로 구성되어 있었던 연구소의 체제를 기초연구부, 교과교육연구부, 비교교육연구부, 전산교육자료개발부, 연구협력부 등의 5개부서로 확대하고, 기초연구부 산하에 교육인류학 연구실, 교육과정 연구실, 도덕교육 연구실을 두었습니다. 또한 그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활동영역들을 중심으로 교육연구소 내에 평생교육센터, 컴퓨터교육센터, 심리검사개발센터, 한국교육사고, 통계분석센터, 통일교육센터 등의 특수사업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하게 됩니다.


연구소의 이런 변화는 박용헌 교수가 1988년 1월 20일 소장으로 임명되고 1990년 연임하면서 이루어졌고, 이후 연구소는 김기석(제13대, 1992-1993), 임인재(제14대, 1993-1994), 윤정일(제15대, 1994-1996; 제16대, 1996-1998), 박성익(제17대, 1998-2000), 나일주(제18대, 2000-2001), 진동섭(제19대, 2001-2002), 김신일(제20대, 2002-2002), 김안중(제21대, 2002-2003), 김계현(제22대, 2003-현재) 소장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교육연구 전문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제고시키고 있습니다.


이 시기 교육연구소는 이전 시기의 연구활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990년-1996년 기간 동안 총 65건, 매년 평균 9.3건에 이르던 연구과제 실적은 1997년-2000년 기간 동안 총 47건, 매년 평균 11.8건으로, 2001년-2002년 기간 중에는 총 79건, 년 평균 39.5건으로 대폭 증가하였습니다. 단행본과 번역물, 교육용 저작물, 학술지 게재논문, 학술회의 발표 및 토론 논문 등을 포함한 연구소 상임연구원들의 연구물은 2001년-2002년 기간 동안 총 800여건에 이릅니다.


출간사업으로는 1980년부터 시작된 「서울대학교 교육학연구」 모노그래프가 2003년까지 총 37권이 발간되었고, 「평생교육연구」는 2001년 12월에 제7권이, 영문 국제학술지 The SNU Journal of Education Ressearch는 2002년 12월 Volume 12가 출간되었습니다. 1994년 2월에는 전 시기에 발간한 「교육학 용어사전」의 전정판을 발간하였으며, 같은 해에 편찬사업에 착수한 「교육학 대백과사전」은 4년여의 작업 끝에 1998년 발간되었습니다. 특히, 이전에 발간된 「교육학 용어사전」이 교육연구의 기초적인 도구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이라면, 「교육학 대백과사전」은 국내외 교육연구의 결과를 집대성하여 교육이론의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것으로 가히 ‘교육이론 연구의 대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육학총서의 일환으로 기획된 「학문과 교육」은 1997년에 상권이, 그리고 2000년에는 그 하권이 발간되었습니다. 국내의 교육연구 활동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한 출판사업으로 1991년부터 출간하기 시작한 국제학술지 The SNU Journal of Education Ressearch는 2002년에 그 12번째 Volume이 발간되었습니다.


학술행사 역시 매우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우선 확대발전기에 3회에 불과하였던 학술행사가 40여회에 걸쳐 이루어짐으로써 10배 이상의 양적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외학자 초청강연회에 초청된 학자들 또한 그 배경이 미국 일변도에서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오스트리아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으며, 국내 학자들을대상으로 한 초청강연회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술행사의 주제에 있어서도 교육방법 중심에서 교사교육, 비교교육, 지능검사, 사회교육, 한국근대교육, 지리교육, 상담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교육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10회에 걸쳐 연속강연이 이루어지는 등, 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의 깊이 역시 더해가고 있습니다.


1997년에 시작된 관악교육정책포럼은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와 교육행정연수원과의 공동으로 매년 1회 혹은 2회, 새로운 교육정책과 제도 중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고 각계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광범위하고도 전문적인 토론회의 형식으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간에 선정된 토론의 주제들―‘위성TV과외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등교육체제 개편’, ‘학교육에서의 인권, 교권, 학습권의 위상’, ‘교원정년단축과 교직사회 안정화 과제’, ‘2002학년 대학입학제도,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 ‘공교육의 실상과 발전을 위한 과제’, ‘지역할당제 입시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악교육정책포럼은 당대 한국교육의 실제에서 논란의 초점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슈들을 학술적인 토론의 장으로 흡수함으로써 이론과 실제 간의 괴리를 극복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교육연구소에서 새롭게 추진하게 된 활동으로는 교육활동과 기관설립 활동을 들 수 있습니다. 1995년과 1996년 2회에 걸쳐 외무부 한국국제협력단의 후원으로 모로코 중등교사를 대상으로 컴퓨터 연수를 실시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인터넷과 통계방법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새로운 사상적 조류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를 돕고 교육학 연구에 주는 시사점을 탐색하고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저작에 대한 학습과 토론회를 1년여에 걸쳐 개최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차 확대되는 사회교육과 탁아교육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평생교육원과 탁아소의 설립 계획 등에도 본 연구소가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3년부터는 지난 3년 동안 서울대학교 아시아태평양교육발전연구단에서 담당해오던 국제학술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Education Research)의 개최와 2종의 교육학 학술지―영문 국제학술지(Asia Pacific Education Review)와 국문학술지(「아시아교육연구」)―의 편집 및 발간 사업을 이어가게 됨으로써 기존의 교육학 연구활동과 더불어 한층 더 밀도있는 사업들을 수행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10월 30일, 31일 양일에 걸쳐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는 ‘아태지역 교육과정의 실태와 개선 방안(School Curriculum in the Asia-Pacific Region: Issues and Prospects)’이라는 주제로 10여개국에서 60여명의 교육학자들이 참석하여 다양하고도 활발한 논의를 펼쳤으며, 영문 국제학술지 Asia Pacific Education Review는 2003년 12월에 Volume 4 Number 2가, 국문학술지 「아시아교육연구」는 2004년 3월에 5권 1호가 발간되었습니다.


향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는 그 설립 목적 및 이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기성 교육학자들의 연구를 지원ㆍ보조하고 신진 교육학도들에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과 더불어 국내외적으로 교육학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그간에 수행해 왔던 연구활동과 함께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이 글은 1997년에 발간된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요람」 및 2001년과 2003년에 각각 작성된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평가 자료」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